- 본문 소개
-
연암은 열하일기 첫머리를 ‘도강록’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압록강을 건너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당시에는 압록강에 교량이 없었기 때문에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다. 중국과 조선 간의 사신이 오가던 압록강상의 도하 지점은 의주의 통군정에서 배를 타고 대안에 도착한 후 다시 삼강을 건너 구련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당시 연암도 의주에서 강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압록강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여 의주에서 10일간을 대기해야 했다.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의주의 구룡정에서 배와 사람, 말에 대한 짐 수색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이름, 거주지, 나이 외에 특이하게도 수염과 흉터의 유무, 키의 장단을 적었고, 말은 털의 빛깔을 기록했다고 한다. 강에는 섬들이 많아 일부 인원들은 그 섬이 중국 대안인 줄로 착각하여 그 섬에 하선했다가 다시 배를 타고 건너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굼실굼실 흘러가는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역사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민족이 강대했던 부여, 고구려, 발해 시대에는 이곳은 우리 민족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힘이 없었을 때에는 외세가 침입해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26p
...